영국의 채용시장에서 AI는 새로운 직무 몇 개를 만드는 수준을 넘어, 기존 지식노동의 채용 기준을 다시 쓰고 있다. Indeed Hiring Lab에 따르면 2026년 6월 말 영국 채용 공고의 9.4%가 AI 또는 관련 도구·소프트웨어를 언급했다. 2023년 약 2%에서 거의 5배 늘었다. 데이터·분석 공고의 48.8%, 소프트웨어 개발 공고의 46.7%가 AI를 언급한다는 점을 보면, AI 역량은 일부 연구팀의 전문 조건이 아니라 채용 문구의 기본 요소에 가까워지고 있다.
확산 범위도 넓다. IT 시스템·솔루션은 30.7%, 과학 연구·개발은 28.1%, 마케팅은 26.2%, 미디어·커뮤니케이션은 22.4%다. 금융·은행도 16.9%, 예술·엔터테인먼트도 16.3%까지 올라왔다. 반면 미용·웰니스, 돌봄, 청소, 운송 서비스는 AI 언급 비율이 1% 아래다. AI 수요가 노동시장 전체에 같은 속도로 번지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결과물을 만들고 반복적인 판단을 수행하는 직무부터 진하게 스며드는 모습이다.
더 눈에 띄는 대목은 전체 채용량과 AI 채용이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점이다. 마케팅의 AI 관련 공고 지수는 341인데 전체 공고 지수는 52로 떨어졌다. 관리직도 344 대 78이다. Indeed가 이를 '두 속도의 노동시장'이라고 부른 이유다. 마케팅이나 관리 인력이 사라진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같은 직무군에서도 AI를 전제로 한 자리를 찾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자리를 줄이는 기업이 갈리고 있다.
구직자 역시 신호를 읽고 있다. AI 직무 검색은 ChatGPT 출시 이후 7배 늘었고, 'engineer'와 'trainer'가 AI와 가장 자주 결합되는 검색어였다. 다만 공고와 검색 데이터는 실제 채용, 임금, 생산성을 직접 보여주지 않는다. 영국 전체 공고는 2026년 초보다 11%, 팬데믹 이전보다 32% 낮고, 졸업생 공고는 팬데믹 이후 계절 기준 최저 수준이다. AI 채용 증가가 전체 고용의 건강한 회복을 뜻하지는 않는다.
개인에게 필요한 대응도 거창한 전환보다 구체적인 설명에 가깝다. 자신의 업무에서 어떤 단계를 AI로 줄일 수 있는지, 결과가 틀렸을 때 무엇으로 검증할지, 기존 전문성을 어떤 워크플로에 연결할지 보여줘야 한다. 앞으로 채용 공고에서 'AI 경험'은 별도 우대사항이 아니라 업무를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를 요구하는 표현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