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DC 2026에서 애플은 다시 AI를 크게 말했다. 팀 쿡은 “가능성의 한계를 밀어붙이는 기술과 혁신”을 예고했고, 발표의 중심에는 새 Siri AI가 있었다. 하지만 The Verge의 시선은 들뜨기보다 차분하다. 애플이 AI의 미래를 새로 여는 장면이라기보다, 오랫동안 미뤄온 Siri와 Apple Intelligence의 약속을 이제야 현실 쪽으로 끌고 오는 장면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번 발표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애플이 모델 경쟁의 언어를 전면에 세우지 않았다는 점이다. 새 Siri는 애플 파운데이션 모델을 쓰지만, 핵심 동력은 Google Gemini에 기대는 구조로 소개됐다. 애플은 OpenAI나 Anthropic과 직접 맞붙겠다는 메시지보다, 사람들이 이미 쓰고 있는 아이폰과 애플 기기 안에서 AI가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쪽을 강조했다. 메시지, 메일, 캘린더, 연락처, 노트, 사진, Safari, 전화 화면을 묶어 실제 행동을 끝내는 개인 비서에 가까운 방향이다.
사용 사례도 ‘대화’보다 ‘처리’에 맞춰져 있다. Siri가 친구와 만날 시간을 찾고, 캘린더 일정을 만들고, 문자나 이메일 초안을 작성한다. 음악가의 다음 공연을 찾아 티켓 구매 알림을 만들고 노래를 재생하는 다단계 흐름도 소개됐다. 특히 화면 인식 데모에서는 Instagram 사진 속 장소를 파악하고, 문자에 한 번 언급된 친구의 새 주소와 비교한 뒤, 그곳을 경유하는 운전 경로를 만드는 장면이 나왔다. Safari 탭 정리, 특정 웹페이지에서 “describe an extension”으로 간단한 확장 기능을 만들게 하는 기능, 항공사에 전화하면 관련 항공편 정보를 통화 화면에 띄우는 카드도 같은 방향에 있다.
다만 이 전략은 편리함만큼이나 긴장을 동반한다. 에이전트가 내 메일, 문자, 연락처, 일정, 노트, 화면 맥락을 읽고 움직인다는 건 강력하지만 민감하다. 애플이 온디바이스 처리와 private cloud compute, 요청 처리 후 데이터 폐기를 반복해서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AI가 더 많은 개인 맥락을 다룰수록, 성능만큼 중요한 질문은 “이 시스템을 믿고 실행을 맡길 수 있는가”가 된다.
출시 일정도 아직 완성형과는 거리가 있다. 새 Siri는 올해 말 베타로 제공될 예정이고, EU와 중국은 규제 문제로 일정이 불확실하다. 소개된 기능 상당수는 이미 다른 회사들이 보여준 경험과 겹친다. 결국 애플의 AI 전략은 빠르게 앞서가는 경쟁이 아니라, 늦게 온 만큼 더 깊게 운영체제에 붙이는 경쟁이다.
성공한다면 Siri는 단순한 음성 비서나 챗봇이 아니라 iOS 전반의 실행 버튼이 될 수 있다. 실패한다면 이번 발표는 또 한 번 “거의 다 왔다”는 애플식 AI 약속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올해 말 베타에서 봐야 할 것은 데모의 화려함이 아니라, 일상적인 요청을 얼마나 자주 끝까지 처리하는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