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는 일반적인 산업 부하처럼 천천히 움직이지 않는다. GPU가 대규모 학습을 시작하거나 요청이 한꺼번에 몰리면 소비 전력이 빠르게 치솟고, 작업이 끝나면 다시 내려간다. 원자로 사업자에게는 까다로운 조건이다. 원자력 발전은 높은 출력으로 오래 운전할 때 경제성이 좋아지지만, 출력 자체를 빠르게 조절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TechCrunch에 따르면 TerraPower는 이 문제를 345MW 용융염 냉각 원자로인 Natrium의 열 저장 구조로 풀고 있다. 원자로 출력은 수요에 맞춰 급히 흔들지 않는다. 원자로는 계속 원자를 쪼개며 열을 만들고, 당장 전기로 바꾸지 않는 열을 거대한 용융염 저장조에 쌓는다.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 저장된 열로 증기를 더 만들어 터빈을 돌린다. 원자로와 전력 수요 사이에 열 저장조를 두는 셈이다.
이 선택에는 운영상의 이유가 있다. 미국 원자로는 92.5%의 시간 동안 최대 출력으로 발전하지만, 기존 원자로가 바꿀 수 있는 출력은 분당 정격 출력의 약 5%에 불과하다. 신형 소형모듈원자로도 약 10% 수준이다. 출력이 낮아지는 동안 원자로와 터빈 같은 고가 설비는 충분히 활용되지 못한다. 반대로 데이터센터의 급격한 부하를 따라가려면 별도의 대규모 배터리가 필요해진다. 기사에서는 천연가스 터빈이 이런 부하 변화의 스트레스로 고장나는 사례도 짚는다.
TerraPower가 처음 이 구조를 구상한 배경은 풍력과 태양광의 간헐성이었다.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들쭉날쭉할 때도 원자로는 높은 이용률을 유지하고, 저장된 열로 전력 공급을 조절하려는 접근이다. 그런데 AI 데이터센터는 반대편에서 비슷한 변동성을 만든다. 전원은 꾸준히 발전하고, 수요 쪽의 출렁임은 저장조가 받아낸다. 재생에너지 중심의 전력망과 직접 전력을 공급받는 데이터센터 모두에 적용할 수 있는 이유다.
사업적으로는 아직 확인할 부분이 많다. TerraPower는 올해 첫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를 발표할 계획으로 알려졌지만 고객은 공개하지 않았다. 프로젝트의 착공 예상 시점은 2027년이며, 초기 원전의 높은 자본비용과 SMR 대량생산이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는 부담도 남아 있다. Meta가 지난 1월 Natrium 발전소 8기 구매에 합의했다는 발표는 있었지만, 이번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의 고객과 같은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사례를 원자력이 AI 전력 문제를 단번에 해결했다는 이야기로 읽기는 이르다. 대신 데이터센터 계약에서 발전량만큼 운영 유연성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TerraPower의 경쟁력은 원자로를 더 빠르게 흔드는 데 있지 않다. 비싼 설비는 계속 돌리고, 저장한 열로 수요 변화를 받아내는 설계에 있다.